두 남자는 악을 썼지만 버둥거리기만 할 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두 남자의 머리카락을 잡고 수영장 주위를 질질 끌고 다녔다.
여름이 감탄했다.
판초 아래 검은 래시가드를 입은 탓에 그가 움직일 때마다 언뜻 보이는 허벅지 근육이 성이 나 마구 꿈틀거렸다.
“진짜 이거 안 놔! 죽고 싶어!”
남자들의 아우성에 그는 못 이기는 척 손을 풀었다.
“이 가 진짜!”
아파서 머리를 잠시 비벼대던 남자들이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그는 양쪽에서 날아오는 주먹을 능숙하게 피했다.
‘저 스텝 좀 봐! 거기다 저 쫀쫀한 근육! 쩔어!’
여름은 더욱 입을 벌리고 구경꾼처럼 섰다.
그때 잠시 멍해 있던 여자가 은근슬쩍 다가오더니 여름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름은 그녀를 피해버렸고, 머리채를 잡았다.
“……아, 아파!”
“아플 짓을 왜 자꾸만 할까 몰라.”
조금 전 남자처럼 뒷머리를 끌어당기자 여자가 아파서 러졌다.
그 바람에 그가 힐끗 쳐다보았다.
씩 웃으며 여름이 화답했다.
‘우리는 한 편이에요!’
그때 그의 얼굴로 주먹이 날아들고 있었다.
“……저!”
일직선으로 날아간 주먹은 그의 손에 붙잡혔다.
그가 당황해서 주춤 멈춘 남자의 양 손목을 잡더니 마치 상큼한 연인처럼 주위로 빙빙 돌렸다.
곧 남자는 수영장으로 휙 날아가서는 떨어졌다.
“……하, 하지 마!”
남겨진 남자가 두려움에 고개를 가로저었으나 그는 목덜미가 잡혀 수영장으로 던져졌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진 듯 너무도 가뿐한 모습이었다.
그를 지켜보던 여름이 여자의 머리채를 놓았다.
“어떻게, 계속할래?”
두려움에 질린 여자는 뒷걸음치더니 도망쳐버렸다.
시녀처럼 따르던 두 여자도, 간신히 수영장에서 기어 올라온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바탕의 소란은 그렇게 끝났다.
짧게 숨을 내쉰 여름이 판초를 쓴 남자 앞으로 다가갔다.
“고맙습니다.”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여름이 슬쩍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우주가 일시에 멈춘 것 같은 기분이었다.
판초 모자로 그늘진 그 얼굴을 코앞에서 보니 정말로 엄청난 미남이었다.
특히나 그의 강렬한 눈빛은 빨려들어 갈 것 같았다.
여름은 넋이 빠진 듯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잠시 여름을 쳐다보았으나 별일 아니라는 듯 돌아서려 했다.
“……저, 저기!”
그의 걸음이 멈추며 뒤로 돌았다.
“손, 다치셨는데…….”
왼쪽 손등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그는 여름의 지적에 왼손을 가볍게 주먹 쥐어 털어냈다.
그러다 여전히 시선을 떼지 못하는 여름을 보더니 피 묻은 손등을 들어 올려 혀로 할짝거렸다.
여름이 굳어버렸다.
그가 피식 웃었다.
새하얗고 고른 치아가 만개한 벚꽃 같았다.
그는 곧 배부른 호랑이처럼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빌라로 들어갔다.
*
“환송회는 해야지. 이래가면 우리가 섭섭다 아이가.”
“제가 어디 영원히 가나요. 놀러 올 거예요.”
“하여간 요즘은 미친 것들이 많다니까.”
불청객들 때문에 환송회 대신 다시금 풀 청소를 끝낸 직원들은 짜증 나고 지친듯했다.
그렇기에 여름은 환송회는 그만두기로 했다.
“그만 퇴근들 하세요.”
“니도 가야지. 내가 가는 길에 태워줄게.”
소장이었다.
“아뇨. 저는 지하철 타고 가면 돼요. 그게 더 빠르고.”
“그라면 기회 될 때 연락 꼭도. 알았제?”
“네.”
그들은 속상한 표정이었지만 청소 용품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들을 배웅한 뒤 돌아보니 빌라는 아직도 불이 훤하게 켜져 있었다.
잠시 고민했으나 여름은 용기를 내어 그 집 현관 벨을 눌렀다.
아까 당황해서 제대로 하지 못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자나?’
벨을 두 번이나 눌렀음에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잠시 안을 들여다보려 기웃하던 여름이 무심코 현관 손잡이를 잡았다.
뜻밖으로 문은 열려 있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저기요.”
안으로 들어서며 여름이 조심히 불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문단속이 안 된 터라 혹시라도 사고가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여름의 걸음이 주춤 멈췄다.
거실 소파에는 그가 느슨하게 누워 있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여름이 놀라 재빨리 뒤로 돌았다.
흰 목욕 가운 아래로 그의 속살이 보였다.
사람이 들어왔음에도 기척이 없는 것을 보니 잠든 것 같았다.
여름은 현관으로 나가려 조심히 한 걸음을 떼었다.
“용건이 뭐야?”
묵직하게 내려앉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오싹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여름은 제 팔에 닭살이 실시간으로 생기는 것을 보았다.
“뭐냐고?”
그는 다시 물었지만 여전히 천장을 바라보며 누운 상태였다.
다만 그의 손가락이 다가오라는 듯 까닥거렸다.
여름은 주춤주춤 그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순간 얼굴이 화끈 붉어졌다.
매끈하고 탄탄한 가슴이 더욱 자세히 보였다.
그는 왼쪽 쇄골과 연결된 가슴에 가지에 핀 매화꽃 문신이 있었다.
‘조, 조폭인가?’
절로 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신은 그에게 잘 어울렸고 또 그가 조폭이라 한들 자신에게는 은인이었다.
여름이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아까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이거.”
여름은 가방을 뒤져 늘 가지고 다니는 소독약과 밴드를 내밀었다.
꼭 감겨만 있던 그의 눈이 슬쩍 떠졌다.
‘아, 진짜 왜 저렇게 잘생긴 거야. 아주 숨 멎겠네…….’
겉보기 약간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 속에 자리한 검은 눈동자는 지나치게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저 때문에 다치셨는데 이거 쓰세요. 그리고 수영장은 다시 청소했어요. 사용하셔도 됩니다.”
그가 두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쪽이 붙여줘.”
왼팔을 앞으로 툭 하니 내밀었다.
“네?”
“피곤해서 그래.”
“……제, 제가요?”
“하기 싫으면 말고.”
그는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갈등하던 여름은 남자 앞으로 조금 더 다가가 앉았다.
‘아, 이 손 좀 봐. 왜 핏줄마저도 멋있는 거야.’
큰 손은 남성적이었지만 길고 미끈한 손가락은 너무 예뻤다.
잠시 남자의 손을 보며 감탄하던 여름은 그의 손이 가볍게 흔들리자 곧 정신 차렸다.
솜에 소독약을 묻혀 긁힌 손등을 조심히 적시고 손바람을 일으켜 말렸다.
그런 후에는 캐릭터가 프린팅된 밴드를 잘 붙여주고 여유분으로 하나 더 챙겨주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일어난 여름이 그에게 다시 꾸벅 인사했다.
“CCTV 확보해뒀어?”
그가 말했다.
“네?”
“그치들, 뒤끝이 별로라서.”
“아, 프런트에 오늘 일 전달했고, CCTV 화면은 담당 직원이 없어 내일 보내준다고 했어요.”
“그 말을 믿어?”
“네?”
“세상에 별 믿을 사람 없을 텐데?”
“여기 직원들 다 좋아요. 친절하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금 여름이 인사하며 돌아서려 했다.
“혹시 케이크 좋아해?”
감겨만 있던 그의 눈이 여름을 보았다.
그 눈을 홀린 듯 바라보던 여름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 그럼요. 완전 좋아하죠!”
미끈하게 빠진 그의 손가락이 들려 한 곳을 지목했다.
열어보라는 뜻 같아서 다가가 냉장고를 열었다.
안에 케이크 상자가 있었다.
“가지고 가.”
“이걸 왜 저한테……?”
“버리기 귀찮아서. 싫으면 안 가져가도 돼.”
척 봐도 고급스러운 포장 상자였다.
안에 든 것은 값비싼 케이크가 틀림없었다.
‘이 아까운 걸 왜 버려.’
“고맙습니다. 잘 먹을게요.”
여름이 쑥스럽게 고개 숙였다.
그러다 케이크 상자에 분홍빛 작은 카드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기 카드 있는데 확인하셨어요?”
“아니.”
그 말에 여름은 카드를 들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여기.”
그는 제 앞으로 다가온 카드를 건네받았다.
하지만 콱 구겨버리더니 쓰레기통이 있는 곳으로 던져버렸다.
“메시지 안 읽어요?”
“어.”
단순한 대답이었다.
더는 할 말도 없어 여름은 케이크를 가지러 되돌아갔다.
남자가 던진 카드가 발밑에 있었다.
구겨진 탓에 안에 든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 생일 축하해.
―린 」
“혹시 오늘 생일이세요?”
여전히 소파에 누워만 있는 그에게 물었다.
“맞아.”
“미역국 드셨어요?”
“아니.”
“그러면 생일 축하 노래는요?”
“없었는데.”
“선물 받은 거 있어요?”
“없어. 왜?”
그 순간 무슨 오지랖인지 여름이 말했다.
“제가 생일 축하 노래 불러줄까요?”
눈을 뜬 그는 살짝 황당하다는 눈빛이었다.
“뭐?”
“아까 저 구해준 것도 있고. 은혜는 갚아야죠.”
여름이 다시 남자 앞으로 다가갔다.
“은혜 갚는 까치, 아시죠?”
‘……미쳤어.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저 남자, 네 오빠 아니고 오늘 처음 보는 남자야. 그런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겠다니? 여름아, 정신 차려!’
하지만 여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열두 시 되려면 아직 오 분 남았으니까 제가 해줄게요.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몇 살?”
“혹시 그쪽, 지금 나한테 작업 거는 거야?”
“작업이 아니라 생일 축하 노래 부르려는 거잖아요.”
그가 피식 웃었다.
보면 볼수록 백만 불짜리 미소였다.
“나이는 서른. 이름은 구산하.”
“그렇구나.”
“이왕이면 선물도 좀 주지 그래?”
“네?”
그가 두 팔을 가볍게 흔들었다.
“춤추면서 불러줘.”
“그럴까요?”
여름은 메고 있던 가방을 그의 맞은편 소파에 휙 던졌다. 그리고 목을 가다듬었다.
“Ye, Ye, Happy Birthday 구산하! Check it out now!”
입으로 비트박스를 하며 한 달 배웠던 방송 댄스를 시전했다.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얼치기 문워크까지 하자 천장을 보며 누웠던 그가 몸을 모로 세웠다.
“생일 축하합니다, Ye. 생일 축하합니다, Ye. 사랑하는 구산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Ye, Ye, Ye!”
그의 커진 눈을 보자 여름은 더 신이 나 소리쳤다.
“One More Time!”
이제 펄쩍펄쩍 소파 주위를 뛰어다니는 것도 모자라 쿠션으로 기타를 치고 긴 머리를 풀어 헤드뱅잉까지 해가며 마구 돌렸다.
어느새 그는 소파에 일어나 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 여름은 더 격하게 노래하고 몸을 흔들었다.
그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쩐지 여름은 기뻤다.
“이제 보니 가수였네?”
한바탕 정체불명의 축하 송을 부르고 나자 그가 말했다.
“맞아요. 내가 노래 좀 해요.”
그의 시원한 웃음을 보고 있노라니 미친 짓거리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벽에 붙은 시계를 보며 여름이 가방을 챙겨 들었다.
“가게?”
“차 끊기기 전에 가야죠. 그리고 이거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여름은 그에게 활짝 웃으며 고개 숙였다.
물론 값비싼 케이크도 챙긴 후 밖으로 나갔다.
*
아침 샤워를 하고 나온 여름은 주방의 냉장고를 열며 난감해졌다.
중앙에 떡하니 보이는 케이크 상자를 보자 어제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그 무슨 요란 발광이었는지.
기억을 떠올릴수록 창피해서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케이크 상자를 꺼내어 식탁에 놓았다.
속에 든 것은 역시나 너무 아름다운 치즈 케이크였다.
마치 어제의 낯부끄러운 일의 산물 같아서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냐, 아냐. 나는 은혜 갚은 거야.”
맞아.
그 남자한테 홀린 게 아니라 순전히 은혜 갚는 까치였던 거야.
하지만 남자의 아름다운 얼굴이, 육감적인 몸이, 다시 눈앞에서 아른거리자 여름은 포크로 앞에 놓아둔 케이크를 한 입 크게 떠 입에 넣었다.
‘아, 왜 이렇게 맛있어.’
맛도 최상이었다.
틀림없이 제과 명장이 만든 것이다.
단것을 먹어서 그런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여름은 케이크를 조각내어 반찬 용기에 잘 분류해서 냉장고에 넣고 따로 지퍼백에도 세 덩이를 넣었다.
‘사무실 사람들이랑 나눠 먹어야지.’
흥겹게 콧노래를 하며 지퍼백을 가방에 넣었다.
그때 여름의 머릿속에 카드에 적힌 ‘린’이 떠올랐다.
어쩐지 여자 이름 같았다.
그것도 아주 예쁜 여자.
‘그렇게 잘생기고 멋진 남자가 애인이 없을 리가 있나.’
그런데 둘이 싸웠나?
부러운 마음에 남은 케이크를 크게 떠 입에 넣었다.
‘아, 진짜 맛있네.’
금세 행복감에 취해 포크로 <a href="https://esports-toto.com/">스타베팅</a> 떠먹었다.
그때 식탁에 놓아둔 핸드폰이 울었다.
모르는 번호라 무시했더니 계속 울어대다 끊겼다.
잠시 후 문자가 도착했다는 짧은 음이 울렸다.
대수롭지 않게 확인하던 여름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 해운대 경찰서 수사 1과 김상문 경정입니다. 어젯밤 정여름 씨가 우아리움 리조트에서 강하은 씨에게 폭행을 행사하신 관계로 고발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 메시지를 받으시면 전화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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